디아블로3 한글버젼 날짜별 공개 Episode




드디어 디아3의 발매일이 5월 15일로 정해졌고 현재 공식홈페이지에서는 한글더빙판 영상과 함께 케릭터들을 날짜별로 소개하고 있다.  현재 깃발을 만드는 이벤트도 진행중이다. 내 지인들은 알겠지만 디아2 때 학교에서 아이템 브로커를 할 정도로 미친듯이 했기 때문에 굉장히 기대중이다. 당시 네임드클랜들은 죄다  IRC로 클랜 채팅을 해서 우리클랜 뿐만 아니라 다른 채널에도 놀러다니고 했었는데 내가 고딩 시절 활동한 클랜 사람들은 이제 중년이 다 되었겠다. 세월 참 빨리 간다. 





















########## Episode



1. 패리아의 데모앨범 커버 디자인인데 어디 올린 적은 없어서 내 블로그에 올려본다. 지금 올린 이 이미지가 내가 작업완료한 커버이며 이미 발매된 데모앨범의 커버는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밴드측에서 임의로 편집된 서체와 레이아웃, 저해상도 파일로 제작된 커버임을 밝힌다. 솔직히 잘 모르는 사람들은 아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발매된 패리아의 데모앨범 커버 디자인 서체, 레이아웃과 8비트 게임의 도트처럼 인쇄된 초저화질 저퀄리티까지 내 손을 거친것이라고 오해 할 것이 뻔하기 때문에(그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겠지만) 그냥 입닫고 있으려다 내 자존감이 너무 상해서 오랜만에 업데이트도 할겸 써본다. 뭐 어차피 데모이며 수량도 적다지만, 내 노력이 들어간 작업물이 나와의 동의도 없이(임의적인 서체 레이아웃과 저화질의 저퀄리티 커버결과물에 대한 부분) 그따위로 나온 것에 나는 솔직히 굉장히 창피하다. 내가 왜 승낙을 해서 내 이미지를 깍아먹었는지, 모니터가 고장나는 바람에 우리 작업도 제대로 완료 못한 그 시점에서 혹여나 커버로 인해 밴드측의 스케쥴에 문제가 생길까 우리 브랜드 작업을 미루고 모니터가 택배로 날아오자 마자 이 작업을 먼저 완료했었다. 하지만 나는 발매된 커버의 퀄리티를 보고는 경악 할 수 밖에 없었고 이 모든 행위에 대해 회의감을 느꼈다. 나는 일을 처리할 때 절대로 그런식으로 대충대충 하지 않는다. 그런 행위는 예의가 아니다. 일단 결과물이 나오면 그것이 어떻게 나왔던 간에 내가 모두 작업 한 것이 된다. 이런 점 때문에 마치 누명이라도 쓴 듯한 기분이다. 게다가 시디에 적혀있는 커버 디자이너의 이름 또한 13 라는 디렉터네임이 존재하지만 실명으로 쓰여 있었다. 그것도 오타가 나서;; 내 이름인 줄도 몰랐다. 그 어떤 부분에서도 내 의사를 물어보지도 않았던 것 같다. 나는 이번 작업을 하면서 배려라는 부분은 눈꼽만큼도 느끼지 못했고, 꽤나 재미있을 것 같고 국내에서는 흔하지 않은 스타일이기 때문에 이를 승낙하고 밴드의 로고 뿐만아니라 커버까지 아무런 대가없이 작업을 해주었지만 굉장한 후회를 하고 있다. 내가 바라는 내 노력들의 보상은 그 무엇도 아닌 잘 나온 결과물 단 하나 뿐이다.  내가 위에 지적한 부분들은 작업을 부탁한 사람이 가져야 할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한다. 이 건 정작  의뢰를 부탁한앨범의 주인인 밴드측에서는 커버의 결과에 개해 별 것도 아니라고 생각 하는데 (이를 판단하는 근거는 애초에 내가 페북에 잠깐 올렸던 저화질의 파일에 본인들이 임의로 서체 레이아웃을 편집해서 인쇄함)  나혼자 일방적으로 신경쓰고 병신이 된 기분이랄까? 이 작업물은 사실 아이디어 때문에 컨셉으로 작업해뒀던 것이고 이걸 먼저 본 우리팀원들이 파트에 먼저 발매해야 한다는 걸 내가 설득해서 커버로 사용하게 만든 것이다. 이런 행동을 한 나는 뭐가 되는 것인가? 뭐 어쩌겠는가 결국엔 내 탓이다.







2. 4월에 들어서 처음 구매한 앨범들이다. 그 동안 다른 앨범들도 꽤나 구매했지만 요즘 들어서 일일이 사진찍고 올리는 게 너무 귀찮아서 그러질 못했다. 예전엔 안그랬는데 해가 갈수록 뭔가 변하는 것 같다. 


3. 몇 달 전에도 이런말을 한 것 같은데 글이 잘 안써진다. 어순이나 문장이 이상하게 나오고 어휘력 또한 굉장히 안 좋아진 것 같다. 기억력이 안좋아지면서 이런 현상들이 같이 생긴 것 같은데 정확한 것은 나도 잘 모르겠다. 페북같은 곳에 그냥 싸지르는 혼잣말 또한 문장이 이상하고 뭔가 엉성하고 병신 같다. 정확한 원인은 모르겠지만 뭐가 고장나도 어디 한 군데가 고장이 난 것 같다. 이런 문제점 때문에 술도 끊었는데 술을 끊었지만 여전하다. 뭐가 문제일까? 누구 말대로 오랫동안 작업실에서 작업만 하는 일상의 패턴으로 인해 사람과 사람간의 대화 단절에서 오는 문제일까? 아니면 술을 많이 마셔서 머리에 문제가 생겨서 그런 것일까? 굉장히 자주 생각해보는데 복합적으로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 물론 정확한 문제점이 뭔지는 나도 모르겠다. 그냥 추측만 하고 있을 뿐..



4. 파트3의 샘플체크가 완료되었고 생산스케쥴에 맞춰 들어갔다. 모자는 샘플체크를 했지만 우리팀에서 원하는 대로 나오지 않아 2차 샘플작업에 들어갔다. 이번에 나올 모자는 스펙과 원단 핏을 모두 바꿨기 때문이다. 파트2의 모자가 후드안에 쓰기 좋게 약간 핏하면거 크라운 뒤쪽은 로우하게 작업했다면(물론 그냥 쓸 수도 있지만..) 이번에는 좀 더 광범위하게 쓸 수 있고, 전작의 핏을 몇 차례 수정해 다른 핏으로 만들었다. 원래 스케쥴대로라면 이번주에 도착해야 하는데 아마도 이번주에는 오지 않을 것 같다. 우리는 항상 뭔가 늦어진다. 한정 소량을 추구하다 보니 우리가 일방적으로 거래처의 스케쥴에 맞 출 수 밖에 없어서 그런 것 같다. 성격상 뭘 하나 끝내지 않으면 그게 신경 쓰여 다른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빨리 작업해야 하는 홈페이지 인트로 페이지 디자인도 손 놓고 있다. 어서 샘플체크하고 신경 안쓰고 작업하고 싶다. 그 때문에 정식오픈 날짜가 약간 미뤄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룩북촬영 콘티 및 편집 상품 촬영까지 5월 초는 거의 죽음이 아닐까 생각된다. 5월 광고까지 모든 게 완료되면 시간 봐서 팀원들과 좋은 곳에 가서 회식이나 해야겠다. 부산에 봐둔 곳이 있는데 어서 모든 것을 완료하고 가고 싶다. 











뒤늦은 업데이트 LifePhoto



프리미엄 애슐리라고 해서 약간 기대를 했었지만 기대보다는 별로인 것 같다.
고르곤졸라 치즈 피자는 치즈와 마늘, 달콤한 소스의 맛이 정말 잘 어우러져 좋았다. 프리미엄 애슐리의 베스트메뉴가 아닐까 생각할 정도다. 치킨은 무에타이 치킨이지만 부드럽고 찰지다. 양송이 스프도 생각보다 진하고 통후추를 곁들였을 때 맛이 좋았던 것 같다. 디져트 코너에는 견과류시럽, 누텔라,카라멜시럽등등 많은 시럽이 있어서 괜찮았던 것 같다. 그 외에 일반 애슐리에도 있는 카레도 여기에도 있었다. 뭐 맛은 집에서 인스턴트 카레로 만든 약간 퀄리티 높은 가정식 카레다. 그냥 집에서 해먹는 카레에 치킨 가슴살만 큼직하게 들어가 있다고 보면된다. 

런치 때는 그릴류 요리와 치즈케잌이 없다. 웨지감자는 정말 맛 없고, 필라프,켈리포니아 볶음밥은 평타 이하, 신메뉴라고 나온 건 추억팔이 음식이었다. 학창시절 분식집에서 먹던 것들을 퓨전으로 재해석한 것인데 김말이에 칠리소스 같은 걸 끼얹는다든지 말도안되는 파스타 떡볶이 뭐 이런 식이다. 김말이는 원래 좋아하기도 하고 평타치기도 쉬운 음식이라 그런지 괜찮았다. 파스타종류는 귀찮아서 담지도 않았다. 피자 기타 음식이 좀 더 많았던 느낌 외에는 퀄리티 면에서 크게 차이가 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일반 애슐리를 간 지 워낙에 오래 되어서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커피는 에스프레소, 라떼, 카푸치노, 아메리카노, 연한커피등이 구비되어 있었다. 아쉬운 건 레모네이드가 없었다. 과일은 미지근해서 식욕이 감퇴, 일반 애슐리보다는 좀 더 비싸지만 타 레스토랑의 샐러드바와 비교했을 때 그냥 적절한 가격인 것 같다. 확실히 애슐리의 장점은 와인의 무한리필,  그릴요리, 치즈케잌등이 나오는 디너 때가 아닌가 싶다.




정말 오랜만에 꺼내입은 네이버후드 세비지  레벨4 상우놈이 찍어줬는데 핏이 찰지게 나왔다.
가방은 상우놈한테 선물받은 것, 우리나라에 하나 밖에 없는 게 자랑


뒤늦은 업데이트 LifePhoto

거래처 때문에 3월 서울갔을 때 찍은 것들
귀찮아서 자세한 설명은 생략












잿빛의 석탄폐석 "살고 싶어" Movie













신도가네토

일본의 명장 신도 가네토는 국내에서는 그리 잘 알려지지 않았다.  아마도 그의 작품 중 한국에서 그나마 대중적으로 알려진 것은 하치 이야기일 것이다. 소설, 일본영화가 굉장히 대중적이고 라세 할스트롬 감독에 의해 리메이크 되어 국내 개봉까지 했기 때문이다. 이런 신도 가네토는 1950년 근대영화협회를 만들어 독립영화제작사를 이끈 감독이기도 하며 시나리오 작가 출신 답게 시나리오에 아주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는 감독이기도 하다.1960년에는 "벌거 벗은 섬" 으로 모스크바국제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차지하기도 했다. 1999년 모스크바국제영화제에서도 본작 "살고 싶어"로 또 다시 그랑프리를 수상하는 영광을 재현한다. 신도가네토의"살고 싶어"는 노인화 되어가는 현대사회에서 버림받고 구박당하는 노인의 모습을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신도 가네토는 원작 오바스테의 전설이라는 민화를 현대라는 배경으로 재해석 해서 시나리오를 다시 썼다. 오바스테의 전설이란 우리나라의 문화로 잘못 알려져있기도 한 고려장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마무라 쇼헤이가 "나라야마 부시코"로 오바스테의 전설을 그대로 따랐다면 신도 가네토는 원작을 재해석 하여 결과에 반항한다. 그가 본작을 만들 때의 나이가 87세였기때문에 그런 의도가 충분히 이해되기도 한다. 그 때문에 본작은 더욱 설득력 있고 노인의 입장을 잘 대변해주고 있다. 놀라운 건 그의 나이 현재 100세의 감독이라는것이다.







살고 싶어

아버지 야스키치를 매일 구박하는  미혼의 큰딸은 조울증을 앓고 있다. 사랑이라고는 전혀 찾아 볼 수 없는 가족, 먼저 세상을 떠난 부인, 이런 고독한 환경에 놓인 노인 야스키치는 하루하루가 괴롭다. 외로움에 술집 마담에게 집착하고, 항문질병으로 인해 대변을 자제하지 못하며, 가끔씩 절도도 일삼는다. 조울증이 있는 큰딸 토쿠코는 이런 말썽쟁이 아버지를 구박하고 요양원에 버리고 싶어 한다. 어느날 자전거 사고로 병원에 입원하게 된 야스키치는 병원에서 한권의 책을 훔치게 된다. 그 책은 오바스테의 전설이다. 자신을 구박하고 버리려는 딸의 모습에 반해 "오바스테의 전설"에서는 자식들이 슬퍼하면서 버리고 싶어 하지 않는 노모 코마의 모습을 보게 된다. 퇴원을 하지만 또 다시 큰딸과의 갈등으로 인해 결국 야스키치는 현대판 오바스테 산(노인을 버리는 곳)인 요양원으로 버려지게 되고 큰딸 토쿠코는 기뻐한다. 요양원에서 책의 나머지 부분을 읽다 끝내 버려지는 코마의 모습을 보며 야스키치는 자신의 현재와 동일한 책 내용에 큰 충격을 받게된다.





신도 가네토의 날카로운 지적과 의미

신도 가네토감독은 노인 요양원을 오바스테 산으로 비유해서 현대판 오바스테의 전설을 매끄럽게 만들면서 노인에 대한 시각과 가족간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노인이 지나칠 정도로 구박받고 사랑받지 못하며 쓸모없는 것으로 묘사되는 부분은 노인화 되어가는 현대사회에서 우리들의 부모이자 하나의 인간인 노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자식들과 나라를 위해 젊음을 바치고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원동력이 되어야 했던 그들의 현재 모습은 마치 석탄이 뜨겁게 타오른 후 남은 석탄폐석의 잿빛이 되어 버린듯 보인다. 하지만 그들의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노인에 대한 사회의 인식과 현실은 차갑기만 하다. 영화 속에서는 끊임 없이 까마귀가 등장하는데 본작에서는 죽음을 암시하며 후에 결말에서는 원작 오바스테의 전설을 은유적으로 뒤집는 장치로 사용된다. 신도 가네토 감독은 본작을 컬러로 연출함과 동시에 원작이자 본작에 등장하는 오바스테의 전설 또한 흑백영상으로 재현했다. 영화속의 두 노인("살고 싶어"의 야스키치와 "오바스테의 전설의 코마)의 모습은 후반부 까지 극명히 대조된다. 구박받는 야스키치, 자식들이 공손히 모시는 노모 코마의 모습에서 희비가 교차한다. 영화  "살고 싶어" 속의 야스키치는 큰딸에게 해주는 것이 없어보인다. 오바스테의 전설의 노모 코마는 장남에게 며느리감을 구해주게 된다.(오바스테의 전설의 배경이 되는 마을은 남자 수에 비해 여자가 매우 귀하게 묘사된다.) 하지만 결국에는 모두자식에게 버려진다. 본작이 가지는 반항이란 바로 이 부분 이후의 내용이다. 큰딸 토쿠코는 아버지를 요양원에 버렸다는 기쁨도 잠시 조울증이 더욱 악화되고 외로움을 느낀다. 결국 무의미해 보이던 아버지의 자리에서 공허함을 느끼고, 아버지를 사랑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토쿠코는 펑펑 울며 요양원에 있는 야스키치에게 달려가 그를 데려온다. 과연 야스키치는 큰딸에게 아무것도 해준 것이 없는가? 신도 가네토 감독는 본작에서 가족의 소중함을 존재 그 자체에 두고 있다. 남들보다 넉넉하지 않아도 잘 살지 않아도 그저 옆에 있어준다는 것 만으로도 가족이란 존재는 버팀목이 되고 의지 할 수 있는 힘이 된다. 세상에 하나뿐인 핏줄로 이어진 부모와 자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살아야 한다. 죽을 환경에 놓이더라도 이 영화의 제목처럼  "살고 싶어"라고 말해야 한다. 비록 그들의 늙고 병든모습이 모든 것을 쏟아낸 잿빛의 석탄폐석 같이 보일지라도 그들이 열심히 달려온 인생은 그 어떤 보석보다 빛나고 아름답다. 이 영화는 우리들에게 "살고 싶어"가 아니라 "살아야 한다"라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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